오징어 게임으로 풀어본 역환율전쟁…최후 승자는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입력 2022-10-03 17:27   수정 2022-10-04 00:18

올해 세계적으로 최고 드라마로 평가받는 ‘오징어 게임’이 유행은 대유행인가 보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부상해 병원에 입원한 러시아 병사들까지 이 드라마로 비유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첫 금리 인상 이후 물가를 잡기 위해 본격화하고 있는 역환율전쟁도 이 드라마를 적용하면 잘 설명된다. 감독인 Fed와 미국 재무부, 주연은 달러화, 조연은 원화를 비롯한 각국 통화, 시나리오 구성은 서바이벌 데스 게임으로 상대방이 최후 저지선(final draw)이 뚫리면 환투기 세력의 집중 타깃이 돼 추락한다는 내용이다.

첫 무대에 오른 게임 참가자는 달러화와 엔화다. 이 게임은 관객이 긴장할 틈도 없이 너무 빨리 너무 싱겁게 끝나 버렸다. 엔·달러 환율은 1차 저지선인 구로다 라인(125엔), 2차 저지선인 미스터엔 라인(130엔)이 잇달아 뚫린 데 이어 최후 저지선으로 여겨지던 플라자 라인(142엔)마저 무너졌다.

엔화가 추락한 것은 정치, 행정규제, 국가채무, 젠더, 글로벌 분야에서 일본이 5대 선진국 함정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함정이란 선진국에 진입했던 국가가 중진국으로 추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을 아랑곳하지 않는 일본은행의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 고집도 패배 요인으로 가세하고 있다.

달러화의 다음 상대인 유로화도 최후 저지선인 패리티 라인(1유로=1달러)이 힘없이 무너졌다. 유로화 가치는 2016년 6월 브렉시트 당시 한 차례 붕괴될 위험에 몰린 적이 있지만 지난해 말까지는 유지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피해가 집중되면서 유럽 경제는 침체하고 있다.

영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치욕적인 사태의 50주년 즈음 파운드화는 또다시 무너지고 있다. 리즈 트러스 정부의 대규모 감세와 재정지출로 영국발 금융위기가 우려되고 있는 만큼 파운드화는 최후 저지선인 1파운드=1달러 선이 뚫리면서 달러화에 완전히 먹힐 가능성이 높다.

모든 통화 중 가장 늦게까지 버틸 것으로 여겨지던 위안화도 ‘포치 라인’으로 부르는 달러당 7위안 선이 무너졌다. 포치 라인이 뚫림에 따라 시진핑 주석의 ‘시황제’ 야망도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분기 성장률이 0.4%로 추락한 것을 계기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진국 함정 우려와 함께 양대 장애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신흥국 통화는 1990년대 중반보다 더 심한 대발산(great divergence)이 발생함에 따라 국제 환투기 세력의 타깃이 되면서 스리랑카를 시작으로 잇달아 ‘디폴트 라인’을 넘고 있다. 문제는 1990년대와 달리 IMF의 재원 사정이 자체 채권 발행을 검토할 만큼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신흥국 통화는 완전히 먹혀 법정통화가 달러화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캉드쉬 라인’을 넘은 원·달러 환율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캉드쉬 라인이란 1997년 여름 휴가철 이후 외국인 자금이 갑작스럽게 이탈하는 서든스톱이 발생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이르자 그때까지 펀더멘털론으로 맞서던 당시 강경식 경제팀이 손을 들어 외환위기가 발생한 최후 저지선을 말한다.

아직 국제 환투기 세력의 표적이 될 만큼 외화 사정이 악화하진 않았지만 무역적자 폭이 확대되는 가운데 정치권의 갈등, 불법자금 해외 거래, 대규모 해외 투자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안정을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전히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는 새 정부 경제팀의 인식과 대응 자세도 문제다.

결론을 맺어 보자. 역환율전쟁에서 벌어지는 ‘오징어 게임’의 최후 승자는 달러화가 될 것인가? 지금까지 가장 잘 버티는 통화가 러시아 루블화라는 점이 미국으로서는 부담이다. 물가를 잡기 위한 달러 강세는 대표적인 근린 궁핍화 정책으로 조만간 피해를 본 국가가 반격하는 부메랑 효과도 우려된다. 달러화가 ‘킹’의 지위를 오랫동안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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